테라리움 테이블

기간.    2018년 5월

내용.   테라리움 테이블 제작

인테리어 작업 과정 기록에서 남겼던 것처럼 마지막 테라리움 작업은 전문가를 통해 기록을 남겨놓기로 했다. 영상은 영상작가 박유석 님에게 부탁했다. 그의 전시나 쇼를 볼 때마다 언젠가는 같이 작업을 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기회가 되었다. 작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한 후 작업실을 방문해주었고, 같이 공간을 보며 영상 컨셉을 잡았다. 이 미팅은 포르투갈로 여행을 가기 전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선인장은 들어오기 전이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작업실로 들어올 선인장 사진을 보여줬다. 선인장이 워낙 크고 존재감이 강렬하기 때문에 영상작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가 궁금해서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선인장을 넣기 전에 테라리움 작업과 영상 촬영을 진행할 수도 있었다. 작가님은 선인장이 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했고, 선인장이 들어온 후로 시간을 맞췄다. 촬영을 끝낸 후에 맥주를 마시며 한 이야기였지만, 작가님은 선인장을 두고 촬영한 게 옳은 선택이었다고 했다.

우선 최대한 자연광이 들어오는 시간에 촬영을 진행하기로 했고,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가 가장 좋은 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는 새벽 6시에 만났다. 작가님이 촬영 장비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작업에 쓰일 도구와 식물을 작업대에 올려두었다. 그런 후 비어있는 유리 수조에 공수한 사막 모래를 부어보았다. 흙을 넣으며 어떤 느낌이 나는지를 확인하며, 흙이 어느 정도의 각도의 능선을 만들 수 있는가를 확인했다. 흙을 계속해서 넣으며 입체적으로 지형을 만들었다. 완만한 경사의 평지와 가파른 구릉 등을 깊이를 활용하여 앞과 뒤에 배치하며 입체감을 높였다. 이를 위해 바 테이블의 폭을 충분하게 제작했던 것이 효과를 봤다.

테라리움을 만드는 작업과, 이를 기록하는 영상 작업. 두 가지 작업이 동시에 이뤄지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자연광을 활용해서 기록을 남기기에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지금 생각해보자면 차라리 자정쯤에 만나서 밤 동안에 조명을 활용해서 촬영을 한 후에, 자연광이 들어오는 시간에 완성작 촬영을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에 맞게 방향을 틀어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준 박유석 작가였다.

모래를 부어 지형이 어느 정도 완성된 후에는 식물이 심어질 곳을 정했다. 그 후에 준비한 자연 수정 클러스터들을 그 포인트들에 놓았다. 그 후에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주기 위해 메인 식물로 정한 소형 용신목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식재했다. 대형 테라리움이기 때문에 너무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쓸 경우에는 산만해 보이게 된다. 이를 위해 균형을 잡아줄 식물로 소형 용신목을 선택했다. 용신목은 실버톤의 녹색을 갖고 있는데, 이에 맞춰 다른 식물들도 비슷한 톤을 가진 것으로 골랐다. 식재를 하다 보면 만들어둔 지형이 무너지기도 하고, 손자국이 남기도 한다. 이를 매끈하게 정리하기 위해 붓을 사용했다. 붓으로 살살 쓸어주면 깔끔하게 다듬어지는데, 이 작업을 하다 보면 어떤 조그마한 세상의 신이 된듯한 기분이 들어 묘한 희열이 느껴진다.

작업을 하면서 박유석 작가님은 계속해서 필요한 그림에 따라 요청을 했다. 6시부터 시작된 작업은 어느새 오후가 되었다. 대강의 배치는 완료되었고, 이제 부수적인 식물만 식재하면 됐다. 해가 떨어지는 것에 대해 조급함을 느꼈지만, 차라리 해가 진 후에 조명을 가지고 완성작을 찍기로 변경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결국 작업이 끝난 것은 거의 해가 질 때쯤이었다. 작업 기록은 끝냈고, 작가님이 준비한 작업물을 기록할 시간이 되었다. 하얀 사막 모래를 스크린 삼아 제작한 영상을 틀었다. 현장에서 영상 조정 작업을 하였다. 불을 끄고 내가 완성한 작업물에 박유석 작가님의 작업이 덧씌워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수정이 거듭되어갈수록 결과물이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결국 작업은 밤 열시가 지나서야 끝났고, 신사동 영동 설렁탕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마무리했다.

며칠 후 작가님에게서 연락이 왔고, 만나서 중간 작업물을 확인하며 영상 방향에 대한 의논을 하기로 했다. 촬영 소스를 보는 날이었기 때문에 긴장도 기대도 되었다. 매크로렌즈로 촬영한 근접 촬영 결과물들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이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스토리 구성을 짠 후에 헤어졌고, 그로부터 또 며칠 후 가편집본을 받았고, 이후 몇 회의 수정 작업을 통해 완성했다. 아래의 영상이 박유석 작가님과의 협업 작업의 결과물이다.

현재 수무 작업실은 가끔씩은 카페로 외부인에게 오픈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위와 같은 구성으로 커피를 대접하고 있다. 바 테이블은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데, 특히 위에 사진 속의 대경 선인장 앞자리가 가장 인기가 많다. 작업실 인테리어 구상의 시작이 직광이 들어오는 이 부분의 경험을 극대화시키자였는데, 그 목적을 훌륭히 달성한 공간이 되어서 좋다. 하지만 바 테이블 상단부분이 조금 더 길어서 바 스툴에 앉은 손님이 커피 잔까지의 거리를 조금 더 좁혔다면 좀 더 쾌적했을 것 같다. 그 부분이 아쉽다.

식물 작업 : 수무
사진 촬영 : 수무 (흑백사진-Minolta SR-1, 컬러사진-Sony a7m3)
영상 작업 : 영상작가 박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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