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과 예술, 그리고 자연의 조우
오래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문화역서울284가 몽환적인 보랏빛으로 물들었습니다. 국내 대표 융합예술 플랫폼, ‘언폴드엑스(Unfold X)’의 현장입니다.
2025년 언폴드엑스의 주제는 <Let Things Go: 관계들의 관계>입니다. 기술의 진보가 바꿔놓은 우리 삶의 관계망을 탐구하고, 단순한 결과물의 전시가 아닌 서로를 매개하며 변형되는 ‘과정’ 자체에 주목합니다. 수무는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윤정 작가의 인터랙티브 설치작, <꿈꾸는 아기들: 일리>의 식재 연출을 맡았습니다.
차가운 기계장치와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진 테크놀로지 아트 곁에, 수무는 어떤 ‘자연’을 놓아야 했을까요? 우리는 그 해답을 작품 속에 등장하는 특별한 아이, ‘해나’에게서 찾았습니다.
| 염색체 8번, 해나의 식탁
한윤정 작가의 작업은 23종의 염색체 이상을 지닌 ‘하이브리드 아기’들이 우주 속 가상의 인큐베이터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작가는 유전자 변이를 결핍이나 장애가 아닌, 남들과 다른 특별함이자 새로운 창조의 힘으로 재해석합니다.
수무가 주목한 것은 그중 ‘염색체 8번, 해나’의 서사였습니다.
“해나는 생명의 씨앗에 숨결을 불어넣어 메마른 섬에 풍요의 식탁을 차려냈다.”
이 문장은 수무에게 강력한 시각적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디지털 스크린이라는 ‘메마른 섬’에 갇힌 해나를 위해, 우리는 현실 세계로 뻗어 나오는 생명의 숨결을 시각화하기로 했습니다.
| Design Concept: 이질적인 아름다움
이번 식재 연출의 핵심은 ‘익숙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인 플랜테리어에서 기대하는 싱그러운 초록빛은 이 작품의 세계관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유전자 편집과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미지의 생명체 곁에는, 현실의 식물이지만 마치 꿈속의 풍경처럼 낯설고 신비로운 존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감하게 ‘백색(White)’과 ‘텍스처(Texture)’에 집중했습니다.
1. 백색의 식물들 (White Palette)
잎과 가지가 하얗게 탈색되거나 본래 흰빛을 띠는 소재들을 주조색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는 스크린에서 뿜어져 나오는 몽환적인 보랏빛 조명과 대비를 이루며, 식물이 스스로 빛을 머금은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2. 거친 질감의 조화 (Rough Texture)
부드러운 꽃잎보다는 거친 껍질이 살아있는 덤불, 촘촘하게 엉킨 이끼, 앙상하지만 힘 있게 뻗은 가지들을 층층이 쌓아 올렸습니다. 이러한 원시적인 질감은 매끄러운 디지털 화면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작품의 입체감을 극대화합니다.
| 경계를 허무는 치유의 풍경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람객은 실시간으로 아기들과 소통하고, 그 곁을 감싸고 있는 수무의 하얀 숲을 마주하게 됩니다.
정상과 비정상, 기술과 자연, 가상과 현실. 우리는 흔히 이것들을 반대되는 개념으로 구분 짓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 수무는 그 경계가 얼마나 유연하게 허물어질 수 있는지 경험했습니다.
기형이 또 다른 아름다움의 원천이 되듯, 색을 잃은 하얀 식물들도 빛을 만나 새로운 생명력을 얻습니다. 기술이 그리는 미래가 차가운 금속성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끌어안는 따뜻한 유기체의 모습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메마른 기계 곁에 피어난 수무의 식물들이, 전시를 찾은 여러분의 마음에도 작은 숨결을 불어넣기를 바랍니다.
[Information]
1. 작품 정보
– 작품명: 꿈꾸는 아기들 : 일리 (Dreaming Babies: Ili)
– 작가: 한윤정 (Yoon Chung Han)
– 재료 및 기법: 인터랙티브 설치, 비디오, 인공지능, 3D 애니메이션, 3D 프린팅, 혼합 재료 조각, 가변크기
– Web: http://yoonchunghan.com/portfolio/dreamingbabies_illi.html
– Instagram: @artofyoonhan
2. 전시 정보
– 전시명: 2025 서울융합예술 페스티벌 언폴드엑스 <Let Things Go>
– 일시: 2025년 12월 9일(화) ~ 12월 21일(일) | 11:00 ~ 19:00
– 장소: 문화역서울284 (서울시 중구 통일로 1)
– 아트디렉터: 김치앤칩스 (Kimchi and Chips)
– 주최/주관: 서울문화재단
[참여 작가]
– 지원 예술가: 김정환, 소보람, 신교명, 양민하, 우주+림희영(유병준), 이정우, 조영각, 최민규, 한윤정, 황인규
– 초청 예술가: Dries DEPOORTER, 룹앤테일, Bassam Issa AL-SABAH, SIDE CORE, 송예환, 송호준, Skawennati, Anouk KRUITHOF, Oblik Soundwork(Chaklam NG), QIU Yu
– 공연·퍼포먼스: goat, Noémi Büchi, Meuko! Meuko! & NONEYE, 윤연준x고휘, Cod.Act, Portrait XO (with special guest Andreas Tegnander)